‘선 넘은 트럼프’ 정치가 월드컵 어지럽힌 흑역사
‘축구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7일(이하 한국시간) 미국과 벨기에의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16강전을 앞두고, 미국 대표팀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에 대한 징계를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발로건은 지난 2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32강전에서 상대 선수의 발목을 밟는 거친 파울로 레드카드를 받고 다이렉트 퇴장을 당했다. 규정대로라면 벨기에전 출전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FIFA가 돌연 징계 유예를 발표했고,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외압 의혹'이 불거졌다. 결국 발로건은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벨기에전 그라운드를 밟았다.
FIFA가 가장 경계해 온 '정치의 축구 개입'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FIFA는 경기장에서 정치적·종교적 메시지가 노출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해 왔다. 선수들이 득점 후 유니폼 상의를 벗으면 자동으로 경고를 받는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경기 시간 지연을 막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유니폼 안쪽에 적힌 정치적·종교적 문구가 전 세계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과거 FIFA 월드컵은 정치인과 독재자들의 선전 도구로 이용된 흑역사도 지니고 있다.
정치가 축구에 개입한 대표적 사례는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이다. 당시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하기 위해 자국 선수들에게 "우승하지 못하면 죽음"이라는 섬뜩한 협박을 가했다. 심판 매수와 압박 속에 이탈리아는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이는 축구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얼룩으로 남았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역시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호르헤 비델라 독재 정권에 이용당했다. 당시 결승 진출을 위해 4골 차 이상의 승리가 필요했던 아르헨티나는 페루를 6-0으로 대파했다. 이후 군부 정권이 페루에 대규모 곡물을 무상 지원하고 정치범을 석방해 준 대가로 승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경기 도중 난입해 판정을 뒤집은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당시 쿠웨이트의 실권자이자 축구협회장이었던 파하드 왕자는 프랑스의 득점에 항의하며 경기장에 무단 난입했다. 그는 선수 철수 협박으로 주심을 압박해 골 판정을 취소시키는 전대미문의 '갑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전례에 비춰본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개입 의혹은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선수 징계 문제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이는 단순한 관심 표명을 넘어 정치 권력이 축구 행정에 개입한 사례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국제 축구계의 시선 역시 결코 가볍지 않을 전망이다.

